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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안상담센터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1회   작성일Date 26-05-21 13:21

    본문

    [한국심리학신문=안수민 (12sumin1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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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부탁을 거절하면 밤잠을 설치는 당신에게"


    회식 자리에서 "오늘 뭐 먹을까?" 하는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하는가. "아무거나요, 다들 편한 걸로"라는 대답이 입에서 튀어나오진 않는가. 상사가 회의 시간에 미간을 찌푸리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하루 종일 가슴이 철렁하진 않는가. 퇴근 10분 전, 동료가 "미안한데 이것 좀 도와줄래?"라고 할 때 속으로는 '에이, 내일 하면 안 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응, 그래"라고 답하진 않는가.


    그리고 그날 밤, 야근을 하며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착하게만 살지? 아니, 착한 게 아니라 그냥... 바보 같은 건가?'


    이건 당신이 착해서도, 바보여서도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타인 맞춤형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타인 맞춤형 레이더'는 언제부터 작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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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 제프리 영(Jeffrey Young)이 개발한 심리도식치료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어린 시절 형성된 '초기 부적응 도식'을 평생 가지고 산다. 이 도식은 쉽게 말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만의 색안경이자, 무의식 속 작동 프로그램이다.


    한국심리도식치료협회에 따르면, 이러한 초기 부적응 도식은 총 18가지로 분류되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타인 중심성' 영역이 현대인들을 괴롭힌다. 복종, 자기희생, 승인추구라는 세 가지 패턴이 그것이다.


    첫 번째, 승인추구 도식이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야만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SNS에 올린 사진의 '좋아요' 개수가 적으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누군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기분이 든다. 조성호(2002)의 연구에 따르면, 승인추구 도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우울과 불안 증상이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두 번째, 자기희생 도식이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도 친구의 이사를 돕는다. 주말에 쉬고 싶어도 부모님 댁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잠을 설친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위해 뭘 해준 적이 있나?'


    세 번째, 복종의 도식이다. 

    갈등이 생길까 봐 내 의견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한다. 회의 시간에 다른 생각이 있어도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괜찮아요"가 먼저 나온다. 1961년 예일대학교의 스탠리 밀그램이 진행한 유명한 '복종 실험'에서는 65%의 사람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해 다른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다. 우리 안의 복종 본능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 레이더는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한 생존 장치였다

    이 타인 맞춤형 레이더가 언제부터 작동하기 시작했을까. 대부분 답은 어린 시절에 있다.


    "네가 말 잘 들어야 엄마가 행복해." 

    "착한 아이는 우는 게 아니야." 

    "그렇게 떼쓰면 사랑받지 못해." 


    어쩌면 당신은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어도 분위기로, 눈빛으로, 침묵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들. 감정을 드러내면 부모님이 불편해하고, 요구를 말하면 짐이 된다는 걸 어린 당신은 어느새 알아챘다.


    제프리 영의 심리도식치료 이론에 따르면, 아동기에는 누구나 충족되어야 할 다섯 가지 핵심 정서 욕구가 있다. 안정적인 애착, 자율성, 감정 표현의 자유, 자발성, 현실적인 한계 설정이 그것이다.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초기 부적응 도식'이 형성된다.


    그때 어린 당신이 찾아낸 해법은 바로 '눈치 보기'였다. 부모님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내 욕구는 뒤로 미루는 것. 이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당신은 생존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것은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당신은 그렇게라도 해야 사랑받고, 관계를 유지하고, 안전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 맞춤형 레이더는 과거의 나를 지킨 소중한 도구였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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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내 마음의 소리에 볼륨을 높여라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어려운 게 아니다.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를 때부터 시작해보자. "다들 뭐 먹고 싶어?"가 아니라 "나는 지금 뭐가 먹고 싶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처음엔 답이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동안 그 질문 자체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감정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다. 거창할 필요 없다. "오늘 부장님 부탁을 수락했을 때, 사실 나는 화났다. 속상했다. 억울했다." 이렇게 한 줄만 적어도 된다. 내 감정을 인정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두 번째, '3초의 여유'를 가져라

    부탁을 받았을 때 조건반사처럼 "네!"라고 대답하는 패턴을 바꿔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 3초만 멈추는 것이다.


    "생각해보고 알려줄게요."

    "확인하고 답변드릴게요."


    이 짧은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그 3초 동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가?" 

    "지금 내 상황에서 가능한가?" 

    "이걸 했을 때 내일의 나는 어떤 기분일까?"


    즉각적인 반응 대신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 이게 바로 당신의 삶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세 번째, 거절은 상대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거절을 '상대방을 싫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거절은 나의 상황과 한계를 알리는 정직한 소통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려워요."

    "이번 주말은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요."

    "지금은 다른 업무에 집중하고 있어서 힘들 것 같아요."


    길게 변명할 필요 없다. 과도하게 사과할 필요도 없다. 정중하고 짧게, 사실만 말하면 된다. 처음엔 어색하고 죄책감이 들 것이다. 가슴이 철렁하고, 밤에 잠이 안 올 수도 있다. 괜찮다. 이것도 연습이다. 근육을 키우듯, 거절하는 근육도 자꾸 써야 단단해진다.



    당신의 배려는 아름답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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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을 배려하는 당신의 마음은 정말 아름답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배려의 목록에 '나 자신'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비행기 안전 수칙을 떠올려보자.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나부터 먼저 착용하라고 한다. 내가 숨을 쉴 수 있어야 옆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에너지도 진심이 될 수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석양이 지는 것처럼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 말은 타인에게도 적용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때, 나라는 존재는 석양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번씩, 작은 선택에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보자. 타인 맞춤형 레이더를 완전히 끌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감도를 조절하고, 때로는 나를 향해서도 작동시킬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욕구와 감정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나'로 살아도 괜찮다.


    참고문헌

    - Jeffrey E. Young 외 저, 권석만 역(2005). 『심리도식치료』. 학지사

    - 한국심리도식치료협회. "심리도식치료란?" [https://ksta.online](https://ksta.online/)

    - 조성호(2002). "초기 부적응 도식과 심리적 부적응".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4(4), 775-788

    - Stanley Milgram(1963).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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